낮과 밤과 시간의 위로에 관한 문장들
한창 글자들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쓰인 글자 그대로 생각 없이 우걱우걱 머리 안에 쑤셔 넣다 보면
시간이 흘러 흘러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스며 들어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 아닌 듯 살아진 어느 날에 문득 아, 내가 깨어있구나 새삼 깨닫는 어느 날에 언뜻, 흘러 지나온 시간을 핑계 삼아 모든 것을 놓아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집어삼키고 싶을 때도 있었다.
시간을 삼켜 지나온 그 나날들의 나의 공감과 위로들을 건네본다.
예술가라고 자칭하고 작곡, 작사, 글쓰기를 한다.
전공은 클래식 작곡이지만 가사가 들리는 곡들을 사랑한다.
그러다가 작사도 하고 글도 쓰게 되었다.
병원비 243.200원, 약값 17.400원
오늘, 혼자 병원에 갔다 오셨을 엄마의 지출 문자.
아빠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7월7일 다른 분 대신 일 가셨다가 과로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32살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셨으며, 37살에 남동생과 나를 둔 과부가 되셨다.
아버지 산재보험금을 아껴 쓰시며 남동생과 나, 우리를 길러내셨고, 다행히 장학금을 받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나는 남들이 말하는 있는 집 자식이어서 예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에는 음악 선생님의 부탁으로 합창단과 성악 반주자였던 터라 작곡 전공자셨던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은행원이 되길 바라셨던 엄마를 설득해 레슨비 없이 작곡을 배우며 예술고 진학을 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주는 장학금으로, 대학교는 지방 지역대지만 입학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사회적 환경과 가정 환경이 비슷했던 우리 집 또한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기 위해 무척 엄격하시고 무서웠던 엄마와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야 속마음을 터놓게 되었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너무 잘 몰랐다고 엄마 자신도 너무 힘들었던 때였노라. 미안했다고 장문의 문자로 사과하셨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센 나의 모습을 보며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으며 자격지심에 욕심은 또 많아 저를 들들 볶아댔다. 그러면서도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오기’라고 말하며 나를 다독였다.
세상에 못 하는 것만 빼고 다 해봤다. 하루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벌어 공부하고, 어학연수 갔다. 더 큰 세상을 누리기 위해 외국회사 오픈데이 면접을 보러 다니고 여행도 다녔다.
아득바득 열심히 산 것 빼곤 뭐 없는데, 삶은 나에게 생각처럼 평범하게 다가오지도, 그저 주지도 않았다.
치열하게 나와 싸우며 힘든 낮과 밤들의 시간과 시기를 삼켜 지나와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위로를 받았던 이야기들을 할 테다.
그리고 다시 또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낮과 밤과 시간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